맞물리다
강여빈
그릇 두 장이 꽉 물렸다
고만고만한 크기의 칠기와 사기가 식탁 위에서 종종 가볍게 툭툭 치며 티격태격 부
딪 치기도 하고 잔기침도 하고 가래를 끓이며 그럭저럭 간격을 유지해 오다가 불가사리 같
은 의혹에, 아니 어린 시절 비가 온 웅덩이에 살짝 진흙을 덮어놓은 개구쟁이들의 함정 그
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다리처럼, 그릇 두 장이 그만 미끄러운 세제에 서로 맞물려 버렸을
때 나는 오래된 벽장 속에 꽁꽁 감춰 둔 지혜의 상식 상자를 꺼내려 까치발을 든다.
자! 우선 큰 냄비에 냉수를 콸콸 쏟아 붓고 맞물린 두 장를 텀벙 담그는 거다 이때 주의
할 것은 칠기 안에 물려있는 사기 안 에는 끓어 넘치는 물을 귀퉁이까지 부어 주는 일
이다.
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지 모를 맞물린 그릇의 신경전을 느긋하게 관찰하다가 어느
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 얼른 사기 귀퉁이를 잡아 옆으로 살짝 비틀어 올려본다. 쭉 뼈를 틀며
칠기에서 영혼처럼 빠져 나오는 저 사기!
이제 건조대 위에서 두 사람이 습관처럼 시치미를 뚝 뗀 체 공기에 뼈를 섞고 있는 중 이다
바람이 한차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.